일상2011. 7. 23. 21:36
입학하자마자 들어야했던 필수과목을 새내기증후군을 핑계로 낙제를 하고,
그 과목을 선수강한 후에 들어야하는 필수강의를 7학기가 지나고 계절학기에야 수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강의는 졸업직전에 들어야한 다는 것, 이 강의를 듣지 않으면 졸업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이 애증의 강의는 나에게 졸업을 의미하는 게 되어버렸었다.
한 학기 한 학기를 지내면서 점점 초조하게 고학년이 되어갔지만 7학기, 8학기의 강의들을 다 들으면서도
별로 졸업을 실감하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는 이 강의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대학생활에서 마지막이 될 강의가 어떤 과목인지를 알고 4년을 보내는 것은 물론 짜증을 동반했지만
묘한 안정감을 주는 일이었다.
8학기를 다 마치도록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부딪혀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이 마지막 강의에 마음의 어딘가를 기대고 있었기 때문인 데에도 조금은 기인했던 것 같다.
아.. 정말 기댈 데가, 혹은 핑계댈 데가 없긴 없었나보다.

그렇게 8학기가 지나갔고 이 무더운 여름, 가장 더운 시간에 나의 대학생활 마지막 강의도 이틀 전 종강을 했다.
음, 그러니까 이 종강은 나에게 곧, 졸업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가능성을 200%믿어 주시는, 남들과 비교하며 불행을 말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마지막 말씀을 주신
박영란 교수님의 초코소라빵과 함께 종강을 했다.
졸업을 했다.
더이상 이 학교에서 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방학마다 완벽한 시간표를 완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할 일도, 학관에서 포관으로 시간에 쫓겨 계단을 오를 일도, 
공강시간에 도서관에 가서 책검색만 잔뜩 하다가 돌아오며 뿌듯함을 느낄 일도, 
학기 시작 할 때마다 학문관 생협에서 인덱스를 리필할 종이를 사며 설렘을 느낄 일도,
오전 공강에 메인디쉬에서 목밥모를 만나 데리야끼치킨덮밥을 먹을 일도,  
아마 다시는 없을 것이다.  
아마.
아이고 이건 마지막 강의 증후군 같은 걸까나

졸업. 참 여러 개의 색을 담고 있는 단어. 
대학교의 졸업은 조금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나처럼 십여년 간 '좋은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해 온 사람으로서는
공포스럽기까지 하구나 졸업이라는 것.
내가 없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고 이 정도로 겁쟁이가 될 줄이야.
이제 슬슬 준비해야 겠다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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