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2012. 6. 10. 03:15

낮에 마음을 좀 다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발제준비를 하면서 재생됐다.

기록하는 일에 대해서는 나를 있게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애착을 갖고 있으니까

세계기록유산을 발제 주제로 맡게 된 것은 (좀 억지일 수도 있지만) 운명..!!

제대로 준비 못하고 시간도 촉박했던 지난 발표는 역시나 총체적 난국을 겪고 면박도 받고 해서 무지 의기소침 했었으나

역시 이거 재미있는 발제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126호 (오잉 외워졌다)

60년대 불국사 석가탑을 도굴당할 뻔했다가 가까스로 면하고 보수인지 도굴 예방인지를 하려던 차,

설비의 부족으로 일어난 사고에, 정말 얼떨결에 발견된 석가탑 속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배경이 어이가 없지만 불국사가 건축될 때 즈음의 목판인쇄물이니까 신라시대의 것! 그러니까 751년 즈음? 더 이전?

전세계를 통틀어 현존하는 최고목판인쇄물로 인정받는다.

불교경전. 신라니까.

 

백운화상초록직지심체요절

이름도 예뻐라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01년 등재(우여곡절 끝이었다)

인류문명 최고의 발명이니 뭐니 하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사실은 한국의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영향을 듬뿍 받은 기술일 뿐이라는 것.

백운화상이 원나라의 직지심체요절 1권을 대폭 늘려 상하권 두권으로 늘린 고려의 직지심체요절은

당시 이미 시작되었던 금속활자기술을 통해서 책으로 만들어졌다.

고려, 그리고 조선에서는 이미 목판인쇄술이 무지 발전되어 있었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려대장경)

더 간편하다고 여겨져 금속활자 인쇄술이 많이 이용되지 않아 구텐베르크에게 오랫동안 영광의 자리를 빼앗겼었지만,

엄연히 금속활자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나온 것이었다.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던 구텐베르크의 성경은 독일의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구조에서 매매의 수단으로,

그러니까 돈벌이로 이용되었고

그것이 결국 구텐베르크가 살아있는 동안 몇차례나 기술이 개량을 거듭할 정도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돈욕심에 눈 먼자들, 아님 시샘하는 자들이 많아 구텐베르크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고.

그리고 그 구텐베르크. 무지 수상하다.

동서양 무역도시인 스트라스부르그에서 10년동안 있다가 고향에 돌아가자마자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이나

1400년대 갑자기 독일에서 전에 없던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인쇄가 동시에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나

한국을 사절단으로 방문한 니콜라우스 어쩌고 추기경과 친구사이였던 것이나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 엘고어)

독일 스트라스부르그에는 구텐베르크 광장도 있고 호텔도 있고 세계 언론에서 여전히 위대하다고 추앙하는데

고려시대 그 누군가 금속활자를 처음 생각해낸 그 사람은 그 이름 한 번 남기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안타깝다.

언젠가 관련 유물이 발견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려나.

고려시대 금속활자 몇 개가 얼마 전에 발견됐다는 소식(증도가자)도 들려오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1377년 청주 흥덕사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

  

 

콜랭 드 플랑시와 리진

 직지 표지에 낙서한 것은 이 사람일까?

주한 공사관으로 한국 고서를 수집해 프랑스로 가져가 버린 남자 그리고 내가 외면할 수 없는 여자 이야기.

시간나면 신경숙의 리진도 읽고 김탁환의 리심도 읽어야 겠다. 아 제목이 바뀌었나? 작가가 바뀌었나? 아 그게 그건가?

 

 

 故박병선 박사

박병선 박사? 남자인가? 했다. 아아아아아아악 나참 내가 이렇게 무식한데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겠나 싶다.

박병선 박사의 이름이 생소하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너무 창피해.

어디가서는 원래 알고 있었던 분인 것처럼 굴거다.

'고매한 삶을 살았다'라는 건 이 분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고

이 시대의 위인, 최준식 교수님의 표현으로는 '문화 영웅'.

작년, 당신 생의 모든 것으로 삼으셨던 외규장각 도서들의 반환(이라 쓰고 대여라 읽는다)행사에 암투병 중에 참석하셨다가

파리로 돌아가 11월에 별세하셨다.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음은 아쉬운 일이지만 한 사람의 생을 다 바친 대가였고 성과였다.

직지할머니. 눈 감으실 적에 편안하셨기를.

 

이렇게 마음으로 한 발제 준비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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